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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요. 와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인사말이다. 허례도 아니다. 그녀의 진심이 묻어있었으니까.
그 당연한 인사말에는 마찬가지로 당연한 답사가 있기 마련이다. 예,
얼마나 안 되셨습니까. 혹은 예, 얼마나 슬프십니까…같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
니었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째서 제게 직접 전화를 거셨습니까.
수많은 동기들과 선후배를 그의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찾아줄 정도로 그를 기껍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
증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여자
친구 외에는 나밖에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문상을 와서 처음으로 꺼낼 말은 아니다. 오
히려 실례에 가까운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제
게 직접 전화를 거셨습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인가.
그녀는 그런 내 말에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그토록 안타까운 것일까.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 전후관계를 따져볼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남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유서였다.
눈에 익은 필체가 유려하게 흰 종이를 수놓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
것을 읽어도 괜찮은지 알 수 없었다. 주저하는 얼굴로 돌아보자 그녀
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끝부분을 가리켰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단 한 줄뿐이었다. 그 문장에 적혀있는 ‘선배’라는 것이 나라는 보
증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리고 그의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눈을 부릅뜨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종이가 뚫어져라 바라본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대체 무엇을 내게 맡기고 싶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사자死者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안타까운 기분 속에서 다시 읽는
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
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그의 유서를 수십 번이나 되읽고 나서야 나는 멍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인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을 어떻게든 표현해보려
고 말을 찾았지만 그 느낌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
다.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 가깝지만 잡으려하면 떠나버
리는.
예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다.
그녀의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옛 연인의 실루엣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허망하면서도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 나는 천천
히 그 실루엣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처
럼 흔들리는 그 영상은, 정작 손을 뻗자 스치는 일조차 없이 하늘거
리며 멀어진다.
제법 시간을 들였지만 나는 끝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어렴풋한 이미지는 떠오르지만 마치 가볍게 지우개로 슥 그어놓은
것처럼 그녀의 모습은 흐릿하다. 나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그녀의
모습을 찾아 기억의 바다를 헤엄쳤다. 하지만 끝내 그녀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없었다. 비참할 정도로 깊은 상실감 속에서 나는 마음 한구
석이 차갑게 굳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오고 싶지 않았다.
전날 평소답지 않은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한 목소리로 푸념 섞인
중얼거림을 몇 마디 남긴 그는 전화를 끊기 직전에는 평소와 다름없
는 쾌활한 목소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 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고 싶지 않았다.
와버리면, 그의 죽음이 확정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학생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한번뿐이었지만, 그 아이가 그토록 기껍게 소개한 건 처음이었으
니까. 그러니까 그 아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학생뿐이었다고 생각
했어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학생이라면, 그 아이가 무슨 의도로 그런 글을 남겼는지 언젠가
깨달아주겠죠. 그걸로 그 아이도….”
허망한 가운데 그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울먹이는 중
년 여인. 위로해야 한다고, 그것이 조문객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위로 받고 싶은 것은 내 쪽
이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대상이 없는 분노는 허무할 뿐이다.
그의 유서를 구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
다. 이해할 수 없고, 아마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앞에서 그 유서를 구겨버릴 수는 없다.
허탈하고 화가 난 가운데 냉정하게 사고하는 자신이 있다.
“선배는 참 차가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놓은 품
평치고는 혹독하다. 그녀를 데려온 그가 오히려 당황하며 보충했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기에 나에 대한 평보다는 그의 당황
을 즐기고 있었다.
“차가운 게 아니라 쿨하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토록 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쿨이라기보다는 드라이겠지.”
절묘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다. 기쁨의 미소라기보다는
자조에 가깝다. 그 모습에 그녀는 확인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역시. 메말랐어요.”
부정은 하지 않았다. 부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객
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평가’라는 시점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따라서 그녀의 주관적 평가에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 주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관과 주관이 맞부딪히면 남는 것은 충돌뿐이다.
불필요한 충돌은 사양이다.
대꾸 없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집어 들자 그녀는 그런 모습을 한
참동안 관찰했다. 그리고 끝내 한숨을 쉬며 그에게 말했다.
“무리야.”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품평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녀
는 평범하게 후배의 여자 친구 역할에 충실했다. 그 점을 제외하면
크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첫 만남에서
소의 품종을 평가하듯 직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여자는 만
나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그녀를 만났던 것은 딱 두 번뿐이다. 한 번은 그들이 사귀고
있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였다. 헤어졌다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니라기에는 미묘한 관계―친구와 연인 사이랄까―였
기에 두 번째 자리는 심히 불편했고, 그 뒤로 그녀와 관계될 것 같은
상황은 애써 피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쉽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
지만 나는 그가 왜 아쉬워하는지 끝끝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가버렸다.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냉정하게 과거를 떠올리던 나는 그녀
의 평가에 동의했다. ‘메말랐군.’ 너무도 뒤늦은 동의다. 뿐만 아니라
의견을 제시했던 당사자조차 없는 상황에서의 동의다. 어처구니가 없
어서 웃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것을 이토록 가깝게 느낀 것은 처음이다.
주변의, 내 세계 안의 구성원이 영원히 없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지
금껏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
었고, 조부모님들은 이미 내가 자라기도 전에 전부 돌아가셨다.
지금껏 나는 죽음에 대해서 막연한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사
전적인 의미밖에 몰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나무
와 동물들조차 내게서 등을 돌려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통하다.
“어서 와요. 와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인사말이다. 허례도 아니다. 그녀의 진심이 묻어있었으니까.
그 당연한 인사말에는 마찬가지로 당연한 답사가 있기 마련이다. 예,
얼마나 안 되셨습니까. 혹은 예, 얼마나 슬프십니까…같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
니었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째서 제게 직접 전화를 거셨습니까.
수많은 동기들과 선후배를 그의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찾아줄 정도로 그를 기껍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
증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여자
친구 외에는 나밖에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문상을 와서 처음으로 꺼낼 말은 아니다. 오
히려 실례에 가까운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제
게 직접 전화를 거셨습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인가.
그녀는 그런 내 말에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그토록 안타까운 것일까.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 전후관계를 따져볼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남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유서였다.
눈에 익은 필체가 유려하게 흰 종이를 수놓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
것을 읽어도 괜찮은지 알 수 없었다. 주저하는 얼굴로 돌아보자 그녀
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끝부분을 가리켰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단 한 줄뿐이었다. 그 문장에 적혀있는 ‘선배’라는 것이 나라는 보
증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리고 그의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눈을 부릅뜨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종이가 뚫어져라 바라본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대체 무엇을 내게 맡기고 싶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사자死者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안타까운 기분 속에서 다시 읽는
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
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그의 유서를 수십 번이나 되읽고 나서야 나는 멍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인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을 어떻게든 표현해보려
고 말을 찾았지만 그 느낌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
다.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 가깝지만 잡으려하면 떠나버
리는.
예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다.
그녀의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옛 연인의 실루엣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허망하면서도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 나는 천천
히 그 실루엣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처
럼 흔들리는 그 영상은, 정작 손을 뻗자 스치는 일조차 없이 하늘거
리며 멀어진다.
제법 시간을 들였지만 나는 끝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어렴풋한 이미지는 떠오르지만 마치 가볍게 지우개로 슥 그어놓은
것처럼 그녀의 모습은 흐릿하다. 나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그녀의
모습을 찾아 기억의 바다를 헤엄쳤다. 하지만 끝내 그녀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없었다. 비참할 정도로 깊은 상실감 속에서 나는 마음 한구
석이 차갑게 굳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오고 싶지 않았다.
전날 평소답지 않은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한 목소리로 푸념 섞인
중얼거림을 몇 마디 남긴 그는 전화를 끊기 직전에는 평소와 다름없
는 쾌활한 목소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 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고 싶지 않았다.
와버리면, 그의 죽음이 확정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학생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한번뿐이었지만, 그 아이가 그토록 기껍게 소개한 건 처음이었으
니까. 그러니까 그 아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학생뿐이었다고 생각
했어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학생이라면, 그 아이가 무슨 의도로 그런 글을 남겼는지 언젠가
깨달아주겠죠. 그걸로 그 아이도….”
허망한 가운데 그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울먹이는 중
년 여인. 위로해야 한다고, 그것이 조문객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위로 받고 싶은 것은 내 쪽
이다.
〈뒤는 선배에게 맡깁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대상이 없는 분노는 허무할 뿐이다.
그의 유서를 구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
다. 이해할 수 없고, 아마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앞에서 그 유서를 구겨버릴 수는 없다.
허탈하고 화가 난 가운데 냉정하게 사고하는 자신이 있다.
“선배는 참 차가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놓은 품
평치고는 혹독하다. 그녀를 데려온 그가 오히려 당황하며 보충했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기에 나에 대한 평보다는 그의 당황
을 즐기고 있었다.
“차가운 게 아니라 쿨하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토록 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쿨이라기보다는 드라이겠지.”
절묘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다. 기쁨의 미소라기보다는
자조에 가깝다. 그 모습에 그녀는 확인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역시. 메말랐어요.”
부정은 하지 않았다. 부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객
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평가’라는 시점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따라서 그녀의 주관적 평가에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 주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관과 주관이 맞부딪히면 남는 것은 충돌뿐이다.
불필요한 충돌은 사양이다.
대꾸 없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집어 들자 그녀는 그런 모습을 한
참동안 관찰했다. 그리고 끝내 한숨을 쉬며 그에게 말했다.
“무리야.”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품평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녀
는 평범하게 후배의 여자 친구 역할에 충실했다. 그 점을 제외하면
크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첫 만남에서
소의 품종을 평가하듯 직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여자는 만
나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그녀를 만났던 것은 딱 두 번뿐이다. 한 번은 그들이 사귀고
있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였다. 헤어졌다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니라기에는 미묘한 관계―친구와 연인 사이랄까―였
기에 두 번째 자리는 심히 불편했고, 그 뒤로 그녀와 관계될 것 같은
상황은 애써 피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쉽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
지만 나는 그가 왜 아쉬워하는지 끝끝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가버렸다.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냉정하게 과거를 떠올리던 나는 그녀
의 평가에 동의했다. ‘메말랐군.’ 너무도 뒤늦은 동의다. 뿐만 아니라
의견을 제시했던 당사자조차 없는 상황에서의 동의다. 어처구니가 없
어서 웃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것을 이토록 가깝게 느낀 것은 처음이다.
주변의, 내 세계 안의 구성원이 영원히 없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지
금껏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
었고, 조부모님들은 이미 내가 자라기도 전에 전부 돌아가셨다.
지금껏 나는 죽음에 대해서 막연한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사
전적인 의미밖에 몰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나무
와 동물들조차 내게서 등을 돌려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통하다.
오늘도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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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는 렙업을 멈추지 않는다... ( ㅌㅌ)
나도 같이 놀다가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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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