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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는 사흘간 머물렀다.
그가 무엇을 나에게 맡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상황
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힘껏 돕는 일뿐이었
다. 그가 내게 남긴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발인이 끝나고 모두가 떠났다. 그의 어머니가 함께 가자고 말해주
었지만 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두어 번 더 내게 권하던 그의 어
머니는 안타깝다는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내 뜻을 이해했다.
도무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권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역시 견딜 수가 없다고 정중히
사과하고 나는 빈소에 남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장례식장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빈소가 이곳저곳에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 의
미가 있는 것은 그의 빈소뿐이다. 흑백의 황량한 광경이 견딜 수 없
는 무게로 전신을 짓눌러온다. 그제야 깨달았다.
정말로, 이제 정말로 끝이라고.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온
몸으로 느껴지자 정말로 그제야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
다. 그가 상상 이상으로 내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을 뒤늦게야 깨닫자 그를 잃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
버텨낼 자신이 사라진다. 흑백의 무거운 공기가 내게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요한다. 강요받는 것은 싫다. 하지만 강요받는
내용은 더욱 싫다. 그가 없다. 그가 죽었다. 나는….
황망한 기분 속에 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선다. 부담스럽게 밝은
햇살이 눈동자를 찌르는 것에 심히 불쾌함을 느끼며 나는 근처 벤치
에 적당히 걸터앉았다. 사흘간의 피로와 심적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
든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하늘로 승천한다.
연기는 하늘거리며 춤추듯 유혹하듯 떠돈다. 모든 연기는 하늘을
향해 움직인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올곧게, 혹은 먼 길을 돌아서.
죽어버리면 땅 속에 파묻혀버리는 인간과 대비된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가족묘지에 묻는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벌
써 오래 전에 누워있는 곁이라고 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안타까운 기분을 느꼈다. 사자死者라고는 하지만
자유로웠던 그가 땅속에 파묻힌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일
이다.
바보와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이도 높은 곳을 좋아할 것이다. 높다는 것은 하늘과 가깝다는 뜻이
다. 하늘, 공기, 그 모든 것은 땅에서부터 먼 곳에 위치한다. 중력에
붙들린 채 땅 위에서밖에 살 수 없는 인간과 달리 높다는 것은 자유
를 상징한다. 땅을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에 발을 딛었던(?) 라이트
형제를 두고 수없이 찬사를 내뱉었던 것처럼 사람은 자유를 꿈꾸고
하늘을 바란다. 그런데 어째서 지극히 자유롭던 그를 땅에 파묻어야
만 하는가.
땅 속에 파묻힌다면, 그것은 내…
“선배!”
앳된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상념에서 벗어나며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내버린다. 나는 새 담배를 꺼내들며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쳐다보았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담배를 물고 있어 열 수도 없었지만― 한쪽 손을
슬쩍 들어 가볍게 그녀에게 응대해주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
고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는다. 폐를 찔러오는 독한 담배 연기가 더
없이 감미롭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다니까요.”
담배가 반쯤 탔을 때 위층에서 내려온 그녀가 어린아이를 나무라
는 것 같은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만인이 아
는 사실이다. 세상은 담배의 해악성과 간접흡연의 해악성에 대해 매
일같이 공격하고 흡연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흡연자는 하루
하루 소수자가 되어가고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런 세태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실제로 흡연이 타인에게 폐가 된다는 지적만큼은
진실이다. 하지만 흡연이 흡연자의 몸에 해롭다는 것은 굳이 지적하
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끊지 않을 뿐이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조금 날카로운 어조로 대꾸한다.
“뭐, 어차피 오래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
사람은 어째서 살아가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저 ‘살아’있는 것을 삶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목
적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추구해나갈 때 우리는 그가 삶을 살고 있다
고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과
연 살아있을까. 하루하루 버텨가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내가, 과
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보다는 매일을 충실하게 보내며 내일
을 향해 자신 있게 걷던 그가, 이미 사자가 되어버린 그가 오히려 더
삶을 가치 있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줄곧 해왔던 생각이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살 가치가 있
는 것일까. 타인이 보기엔 부정적, 혹은 염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화두는 너무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성장해왔
다. 그 생각의 끝이 오래 살 가치가 없다는 결론으로 종결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갑작스레 가라앉은 목소리로 돌아온 화답에 나는 눈을 뜨고 그녀
를 바라본다. 그에게 종종 말했고, 그녀를 만났을 때도 숨기지 않았
던 내용이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묻던 그에게 대답했던 내용이니까.
“취직 축하한다.”
술잔을 내밀며 그에게 말했을 때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작은 회사
라고, 보잘 것 없는 자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그
의 겸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회사의 크기 따위는 관계없
다. 그는 꿈을 향해 걷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내
용이었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대충 쉽게 풀어
서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기관이었
다. 현재까지의 화석연료 기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스템. 어딘지 몽
상가적인 기질이 참으로 그다웠지만, 나는 언젠가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부러 작은 회사에 입사한 것도 그의 뜻이었다. 대기업 내정조차
걷어차고 들어간 그 작은 회사는, 적어도 모두가 꿈을 향해 걷고 있
었다. 회사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 틀림없었다. 그
들 중 일부는 언젠가 좌절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수가 포기하고 떠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대기업보다 작은 회사에
서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빛나고 있었다.
누리끼리한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그는 빛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정말 올곧게, 설령 그 길에 어떤 고난
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직진할 것임을. 그가 바라는 것은 어떤 성
취, 혹은 성과보다는 그것을 꿈꾸며 걷는 내일이었다. 미래로 이어질
내일.
“형은 취직 안할 거예요?”
잔을 비운 그가 질문했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헤맬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계유지는 충분하다. 학생 시절부터 해왔던
일의 확장이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봉투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그도 알고 있다. 학생 때부터 해왔던
번역 일과 관련된 서류다. 한 달에 두 번, 별로 길지 않은 텍스트를
받아 번역하고 다시 보내는 것이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간신히 얻어
낼 수 있었던 일거리였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
만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집에 손을 벌리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도 생활비는 직접 마련하자는 생
각에서 구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규모가 조금 확장되었지만 결국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표정이 미묘한 것도 납득할만하다. 언제까지
나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전문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니
고 어떤 확실한 자리인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 이하의,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다른 건 없어요?”
“그러게 말이다. 역시 취직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싶다.”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
러졌다. 어딘지 화가 난 표정처럼 보였다.
“왜?” 하고 묻자 “왜요?” 하고 대답해온다. 그의 반문을 이해할 수
가 없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그는 약간 난폭하게 술잔을 채우고 단숨
에 비운다. 그리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거 아니었어요?”
화가 난 표정처럼 보인 게 아니었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사흘간 머물렀다.
그가 무엇을 나에게 맡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상황
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힘껏 돕는 일뿐이었
다. 그가 내게 남긴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발인이 끝나고 모두가 떠났다. 그의 어머니가 함께 가자고 말해주
었지만 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두어 번 더 내게 권하던 그의 어
머니는 안타깝다는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내 뜻을 이해했다.
도무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권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역시 견딜 수가 없다고 정중히
사과하고 나는 빈소에 남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장례식장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빈소가 이곳저곳에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 의
미가 있는 것은 그의 빈소뿐이다. 흑백의 황량한 광경이 견딜 수 없
는 무게로 전신을 짓눌러온다. 그제야 깨달았다.
정말로, 이제 정말로 끝이라고.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온
몸으로 느껴지자 정말로 그제야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
다. 그가 상상 이상으로 내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을 뒤늦게야 깨닫자 그를 잃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
버텨낼 자신이 사라진다. 흑백의 무거운 공기가 내게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요한다. 강요받는 것은 싫다. 하지만 강요받는
내용은 더욱 싫다. 그가 없다. 그가 죽었다. 나는….
황망한 기분 속에 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선다. 부담스럽게 밝은
햇살이 눈동자를 찌르는 것에 심히 불쾌함을 느끼며 나는 근처 벤치
에 적당히 걸터앉았다. 사흘간의 피로와 심적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
든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하늘로 승천한다.
연기는 하늘거리며 춤추듯 유혹하듯 떠돈다. 모든 연기는 하늘을
향해 움직인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올곧게, 혹은 먼 길을 돌아서.
죽어버리면 땅 속에 파묻혀버리는 인간과 대비된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가족묘지에 묻는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벌
써 오래 전에 누워있는 곁이라고 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안타까운 기분을 느꼈다. 사자死者라고는 하지만
자유로웠던 그가 땅속에 파묻힌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일
이다.
바보와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이도 높은 곳을 좋아할 것이다. 높다는 것은 하늘과 가깝다는 뜻이
다. 하늘, 공기, 그 모든 것은 땅에서부터 먼 곳에 위치한다. 중력에
붙들린 채 땅 위에서밖에 살 수 없는 인간과 달리 높다는 것은 자유
를 상징한다. 땅을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에 발을 딛었던(?) 라이트
형제를 두고 수없이 찬사를 내뱉었던 것처럼 사람은 자유를 꿈꾸고
하늘을 바란다. 그런데 어째서 지극히 자유롭던 그를 땅에 파묻어야
만 하는가.
땅 속에 파묻힌다면, 그것은 내…
“선배!”
앳된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상념에서 벗어나며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내버린다. 나는 새 담배를 꺼내들며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쳐다보았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담배를 물고 있어 열 수도 없었지만― 한쪽 손을
슬쩍 들어 가볍게 그녀에게 응대해주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
고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는다. 폐를 찔러오는 독한 담배 연기가 더
없이 감미롭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다니까요.”
담배가 반쯤 탔을 때 위층에서 내려온 그녀가 어린아이를 나무라
는 것 같은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만인이 아
는 사실이다. 세상은 담배의 해악성과 간접흡연의 해악성에 대해 매
일같이 공격하고 흡연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흡연자는 하루
하루 소수자가 되어가고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런 세태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실제로 흡연이 타인에게 폐가 된다는 지적만큼은
진실이다. 하지만 흡연이 흡연자의 몸에 해롭다는 것은 굳이 지적하
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끊지 않을 뿐이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조금 날카로운 어조로 대꾸한다.
“뭐, 어차피 오래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
사람은 어째서 살아가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저 ‘살아’있는 것을 삶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목
적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추구해나갈 때 우리는 그가 삶을 살고 있다
고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과
연 살아있을까. 하루하루 버텨가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내가, 과
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보다는 매일을 충실하게 보내며 내일
을 향해 자신 있게 걷던 그가, 이미 사자가 되어버린 그가 오히려 더
삶을 가치 있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줄곧 해왔던 생각이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살 가치가 있
는 것일까. 타인이 보기엔 부정적, 혹은 염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화두는 너무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성장해왔
다. 그 생각의 끝이 오래 살 가치가 없다는 결론으로 종결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갑작스레 가라앉은 목소리로 돌아온 화답에 나는 눈을 뜨고 그녀
를 바라본다. 그에게 종종 말했고, 그녀를 만났을 때도 숨기지 않았
던 내용이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묻던 그에게 대답했던 내용이니까.
“취직 축하한다.”
술잔을 내밀며 그에게 말했을 때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작은 회사
라고, 보잘 것 없는 자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그
의 겸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회사의 크기 따위는 관계없
다. 그는 꿈을 향해 걷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내
용이었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대충 쉽게 풀어
서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기관이었
다. 현재까지의 화석연료 기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스템. 어딘지 몽
상가적인 기질이 참으로 그다웠지만, 나는 언젠가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부러 작은 회사에 입사한 것도 그의 뜻이었다. 대기업 내정조차
걷어차고 들어간 그 작은 회사는, 적어도 모두가 꿈을 향해 걷고 있
었다. 회사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 틀림없었다. 그
들 중 일부는 언젠가 좌절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수가 포기하고 떠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대기업보다 작은 회사에
서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빛나고 있었다.
누리끼리한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그는 빛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정말 올곧게, 설령 그 길에 어떤 고난
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직진할 것임을. 그가 바라는 것은 어떤 성
취, 혹은 성과보다는 그것을 꿈꾸며 걷는 내일이었다. 미래로 이어질
내일.
“형은 취직 안할 거예요?”
잔을 비운 그가 질문했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헤맬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계유지는 충분하다. 학생 시절부터 해왔던
일의 확장이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봉투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그도 알고 있다. 학생 때부터 해왔던
번역 일과 관련된 서류다. 한 달에 두 번, 별로 길지 않은 텍스트를
받아 번역하고 다시 보내는 것이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간신히 얻어
낼 수 있었던 일거리였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
만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집에 손을 벌리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도 생활비는 직접 마련하자는 생
각에서 구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규모가 조금 확장되었지만 결국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표정이 미묘한 것도 납득할만하다. 언제까지
나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전문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니
고 어떤 확실한 자리인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 이하의,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다른 건 없어요?”
“그러게 말이다. 역시 취직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싶다.”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
러졌다. 어딘지 화가 난 표정처럼 보였다.
“왜?” 하고 묻자 “왜요?” 하고 대답해온다. 그의 반문을 이해할 수
가 없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그는 약간 난폭하게 술잔을 채우고 단숨
에 비운다. 그리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거 아니었어요?”
화가 난 표정처럼 보인 게 아니었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좀 쉬었더니 갑자기 급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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