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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돌리고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올곧게 뻗은 뒤태를 뽐내듯 당차게 걷는 그녀의 등이 아름
답기 그지없다.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홀로 총천연색으
로 칠해진 듯 찬연하게 빛나는 그 뒷모습이 시선을 앗아간다.
주변을 모조리 흑백으로 덧칠해버리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가지 마, 가지 말아줘.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입 속을 맴돈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녀의 모습이 멀
어져간다. 으스러뜨릴 듯 꽉 쥐어진 주먹이 아프다. 하지만
팔을 내밀지도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그저 그 뒷모습을 응시한
다. 너무도 확고한 그녀의 발걸음이 차갑게 앞날을 예고한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때늦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안녕, 더는 만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기억해
낼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확고한 이성
의 갑옷을 입고 담담하게 사실을 고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
도 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 속
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토로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풀잎 하나만큼의 감정적 동요만이라도 발견했다면 말했을 것
이다. 하지만 철벽같은 이성으로 결과를 고하는 상대에게 감
정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가지 말아줘.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신기루처럼 흐려진다. 사라질
듯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다.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
습 역시 부옇게 흐려진다. 서있을 힘이 사라져간다. 마음 깊
은 곳에 길게 생채기가 파인다. 아프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
을 끌어 모아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른다. 하지만 흐릿해진 눈
앞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눈물. 아, 그렇다. 눈물이 앞
을 가린다는 말은 이런 느낌이군, 하고 느낀다.
꼴사납다.
서걱거리는 아픔 속에 최초로 느낀 다른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었다. 꼴사납고 한심하다. 대낮, 대로, 대단히 한
심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과 극명히 대
비된다. 확고부동한 결정을 주저 없이 전하고 떠난 그녀와 대
치되는 힘없고 나약한 모습. 후들거리며 떨리는 다리가 그런
나약함을 한층 부추긴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녀의 기억과 싸워야할까.
불안감이 들었다. 이미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의 모습과
흐려진 시야와는 달리 머릿속에서 과거의 그녀가 미소 짓고
말한다. 손을 내밀고 쓰다듬고 입을 맞춰온다. 그녀의 온기가
전해져온다. 아직 떠나간 그녀의 모습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
는데 기억 속의 그녀가 다가온다.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퍼붓
는 호우처럼 사방에 넘쳐간다. 아직 그녀의 뒷모습이 흐릿하
게나마 남아있는데도.
신이시여.
스물일곱 해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신을 찾는다. 부
질없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일
이라도 필요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녀가 떠난다. 그녀의
모습이 멀어져간다. 이런 다급하고 애절한 순간이라면 합리성
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저 이 순간을, 이
상황을 멈출 수 있는 무엇인가다.
그러나 스물일곱 해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들
이 부르짖고 찾았음에도 그 실재를 증명한 적이 없는 신께서
는 당연히 다급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가지 말아줘.
오로지 그 소망 하나만을 담아 마음속에서 울부짖었음에도
그 소망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신께는 물론이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조차 닿지 않는다. 심지어 마음속에서조
차 공허하게 울려 퍼지다 희미하게 사라질 뿐이다.
움켜진 주먹이 아파온다. 아픔이 배가될 때마다 그녀의 뒷
모습이 작아져간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부들거리는
손을 펴고 뺨에 가져간다. 축축하다. 꼴사납기 그지없게도 눈
앞을 가렸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 모양이다. 이런 모습
을 그녀가 본다면 한심함에 혀를 내두르고 더욱 빨리 멀어지
겠지. 그런 것은 싫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기에.
어떻게 그녀는 이별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침
착한다. 그리고 그녀의 일부일지라도 이해해보려는 생각마저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녀는 저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 그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모든 이별은 관계의 종말이다. 이어짐의 끊어짐이다. 연결
의 단절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커다란 사건이며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런 괴로움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확신에 넘치듯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의 기
억에조차 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증명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 뒷모습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녀의 기억들에
습격당해 둘러싸인 채 괴로워하는데 그녀는 그 기억의 한 구
석에조차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떠나간다. 어째서?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답이 나올 리 없다. 편해질 방법은 있다. 그녀
의 사랑을 부정해버리면 된다. 그녀의 마음을 부정해버리면
된다. 언젠가 더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오겠지만 적어도 이 순
간과 앞으로의 단기간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될 것이다. 하
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설령 이것이 마지막이고 미래
가 없을지라도 그녀를, 그녀의 기억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인 채로 남기고 싶다.
그렇기에,
그 뒷모습에 작별을 고하며,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한다.
등을 돌리고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올곧게 뻗은 뒤태를 뽐내듯 당차게 걷는 그녀의 등이 아름
답기 그지없다.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홀로 총천연색으
로 칠해진 듯 찬연하게 빛나는 그 뒷모습이 시선을 앗아간다.
주변을 모조리 흑백으로 덧칠해버리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가지 마, 가지 말아줘.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입 속을 맴돈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녀의 모습이 멀
어져간다. 으스러뜨릴 듯 꽉 쥐어진 주먹이 아프다. 하지만
팔을 내밀지도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그저 그 뒷모습을 응시한
다. 너무도 확고한 그녀의 발걸음이 차갑게 앞날을 예고한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때늦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안녕, 더는 만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기억해
낼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확고한 이성
의 갑옷을 입고 담담하게 사실을 고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
도 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 속
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토로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풀잎 하나만큼의 감정적 동요만이라도 발견했다면 말했을 것
이다. 하지만 철벽같은 이성으로 결과를 고하는 상대에게 감
정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가지 말아줘.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신기루처럼 흐려진다. 사라질
듯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다.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
습 역시 부옇게 흐려진다. 서있을 힘이 사라져간다. 마음 깊
은 곳에 길게 생채기가 파인다. 아프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
을 끌어 모아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른다. 하지만 흐릿해진 눈
앞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눈물. 아, 그렇다. 눈물이 앞
을 가린다는 말은 이런 느낌이군, 하고 느낀다.
꼴사납다.
서걱거리는 아픔 속에 최초로 느낀 다른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었다. 꼴사납고 한심하다. 대낮, 대로, 대단히 한
심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과 극명히 대
비된다. 확고부동한 결정을 주저 없이 전하고 떠난 그녀와 대
치되는 힘없고 나약한 모습. 후들거리며 떨리는 다리가 그런
나약함을 한층 부추긴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녀의 기억과 싸워야할까.
불안감이 들었다. 이미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의 모습과
흐려진 시야와는 달리 머릿속에서 과거의 그녀가 미소 짓고
말한다. 손을 내밀고 쓰다듬고 입을 맞춰온다. 그녀의 온기가
전해져온다. 아직 떠나간 그녀의 모습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
는데 기억 속의 그녀가 다가온다.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퍼붓
는 호우처럼 사방에 넘쳐간다. 아직 그녀의 뒷모습이 흐릿하
게나마 남아있는데도.
신이시여.
스물일곱 해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신을 찾는다. 부
질없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일
이라도 필요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녀가 떠난다. 그녀의
모습이 멀어져간다. 이런 다급하고 애절한 순간이라면 합리성
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저 이 순간을, 이
상황을 멈출 수 있는 무엇인가다.
그러나 스물일곱 해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들
이 부르짖고 찾았음에도 그 실재를 증명한 적이 없는 신께서
는 당연히 다급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가지 말아줘.
오로지 그 소망 하나만을 담아 마음속에서 울부짖었음에도
그 소망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신께는 물론이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조차 닿지 않는다. 심지어 마음속에서조
차 공허하게 울려 퍼지다 희미하게 사라질 뿐이다.
움켜진 주먹이 아파온다. 아픔이 배가될 때마다 그녀의 뒷
모습이 작아져간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부들거리는
손을 펴고 뺨에 가져간다. 축축하다. 꼴사납기 그지없게도 눈
앞을 가렸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 모양이다. 이런 모습
을 그녀가 본다면 한심함에 혀를 내두르고 더욱 빨리 멀어지
겠지. 그런 것은 싫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기에.
어떻게 그녀는 이별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침
착한다. 그리고 그녀의 일부일지라도 이해해보려는 생각마저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녀는 저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 그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모든 이별은 관계의 종말이다. 이어짐의 끊어짐이다. 연결
의 단절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커다란 사건이며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런 괴로움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확신에 넘치듯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의 기
억에조차 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증명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 뒷모습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녀의 기억들에
습격당해 둘러싸인 채 괴로워하는데 그녀는 그 기억의 한 구
석에조차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떠나간다. 어째서?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답이 나올 리 없다. 편해질 방법은 있다. 그녀
의 사랑을 부정해버리면 된다. 그녀의 마음을 부정해버리면
된다. 언젠가 더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오겠지만 적어도 이 순
간과 앞으로의 단기간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될 것이다. 하
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설령 이것이 마지막이고 미래
가 없을지라도 그녀를, 그녀의 기억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인 채로 남기고 싶다.
그렇기에,
그 뒷모습에 작별을 고하며,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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